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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행복공학칼럼3>말도 안되는 행복한 노숙? 가능할까?
정형원 | 승인 2020.03.16 19:34
정형원 사회복지법인 행복공학재단 이사
        전 누리데이타시스템 대표

노숙은 어쩌면 인생의 막장일지 모른다. 밑바닥의 삶보다 더 비참한 인생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우리의 삶은 남의 평가에 의하여 눈치보기에 급급하게 된다. 남의 눈치기준으로 평가되는 삶을 영위하게 되므로, 남의 눈치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노숙은 인생이라고 평가되기는 매우 어려운 삶이다. 인간적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행복은 스스로 결정하는 자의적 해석이 되지 못하고, 남의 눈치에서 얻어지는 만족감으로 행복은 평가되기 마련이다.
눈치보기의 기준으로 괜찮아 보이거나, 더 좋아 보이는 노숙은 없을까. 공공기관에서 노숙인 쉼터를 만들어 두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는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노숙은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구속 없이 운영될 수 없는 쉼터로 가겠는가. 인생이기를 포기하면서 남의 눈치와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내 멋대로 굴러도 되는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남의 눈치와 무관한 자유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구속은 싫은 것이다.


의식주와 생계비 확보에 실패했지만, 행복한 노숙의 삶이 가능할까? 행복공학적 접근으로 해답을 찾는다. 행노DBN카드(행복한노숙의 DBN카드/Daily Budgeting Networks)로 남의 눈치와 무관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당연히 행복한 노숙프로램에서 조건으로 내건 구속이 적지 않지만 수용할 수 있는 제도로 운영된다. 노숙인 하지만씨의 일상에서 행복한 노숙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하지만씨의 노숙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겨우 눈을 뜨긴 했지만 해장술 없이는 일어나 숨 쉴 기운도 없다. 밤새 열리는 지하철 로비의 초미니 수퍼로 간다. 예전에 문화원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막걸리제조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막걸리로 식사를 대신했던 선조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씨는 소주는 마시지 않고, 언제나 막걸리를 마신다.
그는 초미니 수퍼에서 컵라면과 고기만두 2개를 구입하고, 텔러포스(teller POS : 초미니수퍼의 카운터에 설치된 point of sales, 유통정보처리)의 바코드리더에서 행노DBN카드로 물품대 1,200원을 읽히고 1,300원의 현금을 청구했다. 화면에 2,500원을 결제하라는 지시가 뜬다. 행노카드를 투입한다. “띠링”결제가 끝나고 카운터 점원이 구입한 물품과 현금1,300원을 건네준다. 초미니 수퍼에서 담배 및 술은 행노DBN카드로 결제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현금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방금 인출한 현금 1,300원으로 막걸리 1병을 추가 구입한다.  


하지만씨는 지하철 빈 상가자리에 설치된 켑슐하우스로 돌아오는 중에, 공중변소 세면대에서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캡슐하우스 문의 암호키에 행노DBN카드를 터치한다. 하지만씨는 자신의 생일과 자신이 한 때 꿈꾸고 좋아했던 4번 타자의 느낌으로 만든 비밀번호 #69004를 입력했다. 문이 열린다. 2층방이라 문을 열고 물건들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오른다. 벽에 붙은 폴더식 탁자를 내려펼치고, 다리를 쭉 뻗고 벽에 기대어 채널고정 TV를 켰다. 정부 선전뉴스, 흘러간 옛 노래, 국악과 옛 영화프로그램뿐이지만, 그는 심심하진 않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만두를 먹는다. 막걸리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는다.


그는 지하철 밖의 태양은 여전히 떠올랐으리라고 생각한다. 막걸리 냄새를 어떻게 제거할까 고민이 화악 치밀어 오른다. 저녁 6시에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회사동료 부친의 팔순잔치에 가야한다. 하지만씨는 전기공고를 졸업하고 고교시절 국악동아리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30여년 전기국악기 수리회사에서 근무를 했던 것이다.
공중변소 샤워기의 온수는 새벽1시부터 4시까지 나온다. 지하철관리사무소는 4시 이전에 샤워를 마치라고 늘 단속하는데, 벌써 5시가 넘었다. 서둘러야겠다. 할 수 없이 찬물샤워이다. 법제유황과 비타민C가 탑재된 샤워캡을 부착하고 샤워를 한다. 온수로 샤워를 하면 유황온천의 느낌도 있다. 저녁모임을 위하여 며칠간 계속 샤워를 했더니 몸에 찌든 냄새는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오늘은 따뜻한 욕탕과 사우나가 더 아쉽다. 
다섯 정거장을 가야 초미니의류임대세탁소가 있다. 저녁에 입을 옷을 얘기해 두고 나왔다. 어제 밤 게으름을 피우다가 캡슐하우스를 너무 멀리 예약하게 되었다. 거의 스무 정거장 쯤 가야되는 반대편 종착역 부근의 빗물펌프장 마당에 설치된 특용작물자동재배기를 점검하러 간다. 전기라면 자신이 있는 편인데 자동재배기를 열어 볼 수는 없고 구경만 하게 한다. 하지만씨에게 배정된 자동재배기는 키 큰 냉장고와 비슷하다. 질경이, 금시초 및 금전초의 자동재배기이다. 세 가지 식물교본을 몇 번 읽어 봐서 작물을 볼 때마다 가족을 만나는 느낌도 있다. 행노DBN카드를 투입해서, 제거할 때까지 방문 및 체류시간이 기록된다. 하루 2회 이상 방문해서 점검해야 된다. 또한 동네교회에 주1회는 꼭 출석을 해야 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재배기관리는 동네교회협의회의 자원봉사자들 몫이다. 수확된 금액의 60%가 하지만씨의 행노DBN카드에 입금된다. 매일 1만원의 지불금을 확보하는 수확은 문제가 없다. 


그는 점심때 영등포역 노숙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일몰제 1만원으로 제한된 행노DBN카드는 아직 7,500원의 여유가 있다. 가능한 한 적게 쓰려고 하지만 노숙친구들 만나면 꼭 바닥을 내고 만다. 오늘도 그들과 소주한잔 해야 되는데, 일단 현금을 찾아서 소주 3병을 사고 5,400원을 지불했다. 2천원은 남겨야 된다. 의류임대료를 결제해야 된다. 영등포역은 언제나 너절하다. 역 광장이 없으니 다섯 명이 고가도로 밑으로 이동했다. 하지만씨는 술을 건냈다. 소주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오늘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들어도들어도 같은 얘기지만 또 나눈다.


해가 질 무렵 초미니의류임대세탁소에 2천원을 결제하고 옷을 빌렸다. 팔순잔치에 국악동아리시절에 자주 읊조렸던 장구를 치면서 “성주풀이” 한 가락 뽑았다. 늦은 여름밤의 바깥공기는 아직도 후덥지근하다. 하지만씨는 국악과 특용작물을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에 잠겨 공중전화박스 DID안내에 따라 행노DBN카드를 삽입하고 오늘밤을 지낼 캡슐하우스 빈방을 검색한다. 하지만씨에게는 행노DBN카드, 캡슐하우스, 초미니수퍼, 초미니의류임대세탁소, 온수샤워공중변소, 자동재배기 등으로 남의 눈치에 그런대로 버틸 수 있는 안도의 미소를 띈다. 이런 행복도 있지 않을까, 때론 천민적 졸부의 삶보다는 나을 것 같아 으쓱해 본다.

 

정형원  webmaster@ign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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