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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신년기획/베이비부머의 은퇴없는 삶 1
강남포스트 | 승인 2020.01.07 20:59

 

본지는 2020신년기획으로 올해부터 노년층으로 입성하는 베이비붐세대(1955년생~1963년생)에 대한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일하는 시니어들의 중심세대인 ‘베이비부머의 은퇴없는 삶’을 위한 정보(일에 대한 철학, 경제관과 소비 형태, 취미생활과 열정)를 살펴보고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준비를 제안하고자 한다. 평생 배우며 일하는 삶을 영위하려면 먼저 일에 대한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 일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국내 시니어 정책이 바르게 세워지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베이비부머들이 고령화 시대에 희망을 제시하는 대한민국 중심세대가 되길 기대해본다. (편집자주)

 


                  베이비붐세대 2막인생

일의 철학을 바꾸자


글 / 정일화(정치학 박사, 한국일보 전 워싱턴특파원, 사단법인 청지기교육연구원이사장)

 

어쩌다 노인된 베이비부머들

올해는 베이비붐세대 맏이인 1955년생 베이비부머들이 국민연금과 지하철 무료승차가 실시되는 해이다. 1955년 태어난 아이의 당시 기대수명은 66세였다. 그래서인지 노인복지법의 노인 기준은 65세 이상이다. 노인복지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노인에게 수송시설과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해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분증을 보여 주고 은행에서 교통카드를 만들어 상시 이용하거나 지하철역에서 주민증을 이용해 받을 수 있는 ‘시니어패스’다.
 그리고 만 65세 이상이고 소득이 하위 70%에 해당하면 기초연금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는 소득 하위 20%에게 월 최대 30만원을 줬지만, 올해부터는 소득 하위 40%까지 30만원을 지원하도록 범위를 넓혔다. 의료비도 치아 2개까지 임플란트 비용도 일부 지원되는 등 늘어난다. 1인당 5000만원까지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 비과세종합저축 등의 혜택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의 2018년 무임승차 비용이 3721억원이다. 2019년은 물론 올해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거라 본다. 올해 기초연금 예산이 13조 1765억원으로 2019년(11조 4952억원)보다 1조 6813억원(14.6%) 늘어난 것이 좋은 예다.
 현재는 기대수명이 82세,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지 29년이 지났고 그동안 기대수명은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16세가 늘었다. 서울시가 65세 이상 서울 시민 3034명을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노인복지법의 기준 연령보다 7.5세가 많다. 노인복지법의 노인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기준을 올리면 65세 이상이면 받을 수 있었던 복지를 거둬들이는 것이라 쉽지 않다. 노인들이 각자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도 달라 일괄 적용하기도 힘들다. 결국 정부의 인구정책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11월 노인복지정책을 7개 영역으로 나눠 정책별 연령기준을 조정하겠다는 발표만 했다.

 

일 잘하는 대한민국의 위상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열심히 일하여 잘사는 나라가 된 나라’로 꼽힌다. 우리는 말을 타고 이웃을 정복해 부(富)를 얻지도 않았으며, 오직 열심히 일해서 오늘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들이 우리도 한국처럼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우리나라를 모델로 경제성장 계획을 세운다. 세계의 많은 가난하고 억눌린 나라들의 희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허나 불과 50년 전만해도 우리는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다. 한국 전쟁을 치루고 폐허가 된 나라의 재건을 위해 돈 벌러 간 파견광부가 63년에서 77년까지 7,936명, 간호사가 1만 1,057명인데 이들이 송금해주는 외화가 연간 5000만불(GNP의 2%)이었다. 60년대는 우리나라가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1인당 GNP 76불, 당시 필리핀 170불)였다.
 당시 독일 광부로 취업한 국민들을 위문 간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가 못살아 여러분을 이렇게 고생시킨다. 우리세대는 못살지만 후손들에게는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자”는 말을 하면서 울자 참석한 광부, 간호사, 교포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같이 온 독일총리가 감동을 받아 우리에게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세계는 실업문제로 시들고 있다
 실업문제로 온 세계가 난리다. 직장인이 실직자가 된 것도 문제지만, 직장을 처음부터 얻지 못하는 청년실업과 조기은퇴자를 포함한 중년 실직이 심각해져 국가의 무거운 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도 실업문제가 해결해야할 최우선 문제고 경제도 실업문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19년만에 최저 실업률 4.4%(2019년 5월 기준)가 되었다. 경제 강국 미국도 2019년 실업률 3.5%(11월 19일 발표)로 1969년 이후 50년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했다. 또한 전 세계 OECD 국가 35개국 조사결과 고용률 1위는 아이슬란드(84.95%)로, 거의 완전고용형태로 거의 모든 업체가 인력난을 겪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으며, 2,3순위는 스위스, 뉴질랜드(76%)이다. 심각한 구인난으로 인해 한국의 젊은이들이 취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75%로 6위, 한국은 전체 35개국 중 23위, 하위권으로 66%의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독특한 일의 개념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한국의 일자리 개념은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첫째는, 통치마개념(slacks system)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넉넉한 통치마를 걸치고 있다가, 필요하면 달라붙는 바지도 만들어 입고, 반으로 잘라 상의와 하위로 분리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자그맣게 여러 개의 덧옷을 만들기도 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첫 해외인력수출품목이었던 서독 파견광부는 곡갱이 한번 잡아보지 않은 대학 출신들이 대부분 선발되었지만 석탄 캐는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 독일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게다가 기계가 고장나면 스스로 고쳐 일을 하고, 팀원이 몸이 아프면 그 사람 일을 공동으로 맡아 기어이 일을 다 해내는 성실하고 책임감과 의리있는 국민성으로 신뢰를 받았다. 이들 광부들은 계약 기간이 마친 후 현지에 남아 다시 학문을 하기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자동차정비소나 슈퍼마켓을 경영하면서 일류 기술자나 경영자가 되었다.
 중동에서 불도저 운전수를 대거 모집할 때, 한국인들은 자동차면허증도 없으면서 운전교육을 시켜 현지에 파견하자 어떤 불도저 운전수보다 훨씬 일을 잘해냈다. 취직자리가 없어 놀던 공대 졸업생들이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다. 중동 건설붐이 한창 일어날 때 현지에서 한국인들은 인기였다. 현대식 건물을 짓기 위해 온 한국 사람들이 가난한 현지인들의 부서진 집도 고쳐주고, 창문도 달아주고, 한국 불도저 운전수들은 현지인들의 고급 승용차도 간단히 고쳐주기도 했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일하면서 그곳 주민들에게 우물을 파 선사하여 한국인을 천사처럼 대접하는 곳도 많았다. 해외에 나가도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들이다.
 한국인에게 일은 학벌과 전공에 관계없이 닥치는 대로 뭐든 척척해내는 통바지 직장이었다. 바다 밑을 한번도 뚫어본 적도 없지만 한국인들은 해저터널을 가장 잘 뚫는 사람들로 인정받았고, 이순신 장군 이후 한번도 배다운 배를 만들어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세계최고의 조선국이 되었다.
  둘째는, 일을 처음부터 단순한 돈으로 보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경제건설이 일어났을 때 한국인들은 돈을 벌자는 가치를 내걸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국민된 도리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경제건설은 돈이라는 개념보다는 후손에게 배고품을 물려주지 않는 희망으로 다가왔고, 힘없는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애국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해외로 나간 노동자들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공기를 맞추고, 때로는 한국인의 명예를 위해 밑지는 공사비를 받고도 완벽한 공사를 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잘 살게 되었지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자식교육을 위해, 또는 나라의 명예를 위해 일한다는 각오와 자부심으로 부풀어 있었다.
 중동의 뜨거운 열사를 헤집고 삽질을 했던 노동자들, 월남 전쟁터를 누비며 교량을 건설하고 진지를 구축하던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열심과 정열이었다. 일은 단순히 잡(job)이 아니었으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소명이었다.

 

시니어층의 직업 전환을 위한 대학 개방
 대한민국이 경제건설 과정에서 일으켰던 일의 개념을 21세기 일의 철학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일의 개념을 과학기술과 국제경쟁력이 높아질대로 높아져버린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큰 잣대는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의 전환을 쉽게 할 수 있는 교육 및 사회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일자리는 계속 전자화되고 세분화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아날로그화로 가는 측면도 있고, 세분화되는 것 같지만 통합으로 가는 측면도 있다. 좁은 시장에서 고급기술을 매진하다가 실패했을 경우 통합적 하급기술을 찾아 성공하기도하고, 관련 분야를 아예 떠나 제조에서 판매로, 판매에서 디자인으로 직업을 전환하여 성공하기도 한다. 기술직을 떠나 농어촌에 뒤늦게 뛰어들어 성공하는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전환은 같은 직종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연령, 성별, 지역 문제에서도 쉽게 성공할 수 있도록 체제가 바뀌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초 모양을 바꿔야 한다. 기초만 튼튼하면 얼마든지 내용은 보태고 뺄 수 있다. 전에는 웬만한 대학에는 문리과대학이 있었다. 사회학, 정치학, 외교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물리, 화학, 지학, 그리고 영문학, 독문학, 국문학하는 학생들이 한 캠퍼스에서 어울리면서 전공과 다른 강의도 듣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지식의 폭을 넓혀 갔다. 세밀한 전공을 배우는 것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통바지식으로 배우는 학문도 분명 장점이 있다. 세분교육을 줄이자는 건 아니고 통바지교육도 살리자는 것이다.
 탄탄한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통바지식 일자리를 잡았다가 새로운 직종으로 전환할 의사가 생긴다거나 40대 조기퇴직을 하면 그땐 자기에게 맞는 전문교육을 받으면 된다. 전문대학이나 실업고등학교의 문을 대폭 열어 조기퇴직이나 노령 등의 이유로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등록금을 국가가 일정부문 지원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40대가 직업 전환을 위해 새로 학교에 들어가면 등록금의 40%만 내고 나머지를 국가가 부담하고, 50대는 더 많이 지원하는 식으로 노령인구를 대학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자기를 실현하는 일의 철학
 둘째는, 일의 철학을 세우자는 것이다. 일을 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일은 자식교육도 되고, 식구의 양식도 되고, 명예도 되고, 국민으로서의 임무도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고 오직 일은 돈을 받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회학자 A. 매슬로(Abraham Maslow)가 말하는 것처럼, 일을 단순하게 먹고사는 수단이나 그보다 약간 높은 단계인 자기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머물지 말고, 이웃으로부터 존경받고, 심미적 경지를 파고들며 결국에는 자기실현(self actualization)을 이룩하는 고급적인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나친 분업은 이런 포괄적 일의 철학을 거부하게 된다. 이런 일의 철학이 새롭게 정립되면 일을 찾고 전환할 때도 전혀 새로운 접근이 이뤄질 수 있다.
 대학에서 전공한 과목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다른 능력을 동원하여 전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낼 수도 있고, 같은 일자리라도 일의 의미를 살려 즐겁고 정열적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다. 40~50대가 실업을 하고 같은 직종을 찾다가 결국 실패하면서 80세 90세를 살기보다는, 50세가 되도록 쌓은 경험을 교육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국면의 일자리를 찾거나 스스로 만들어가게 된다. 만일 디지털 직업을 갖던 40대가 조기 퇴직하여 아날로그 일자리를 찾고, 사회체제가 그런 전환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하게 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좀 투박한 사례이지만, 우리의 전통적 농업사회에서는 연령에 따른 일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과거엔 오랜 경험자들에 의해 종자 개발과 보관 등을 해왔지만, 지금은 대개 종자회사에서 사오고 있다. 하지만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노령인구의 유기농법, 전통농업 방식이 급격히 각광받고 있는 측면에서 보면 전통 농업법을 지키며 개선해나가는 교육이 절실하다. 자연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이 없다. 인간의 수명이 점점 더 길어진다면, 거기에는 분명 중장년 및 노령인구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와 국가 모든 분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해야 할 일을 갖고 태어난 소명자이며, 그런 소명을 갖고 일을 찾는 자를 신은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개개인의 일의 철학이 정립되고, 그런 철학을 갖고 국가 경영이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은 아마도 21세기 일하는 국민의 나라로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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