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 김성숙 선생 51주기 추모제』가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 앞에서 김성숙 선생 유족과 양홍준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해 광복회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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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는 국민의례 및 운암 김성숙 선생 및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운암 김성숙 선생 약사 보고, 서울남부보훈지청장(양홍준)의 추모사, 헌시낭송, 추모공연, 헌화ㆍ분향의 순으로 거행되었다.
이번 추모제에서는 ‘운암 김성숙 평전’이 출간된 기념으로 평전 봉정식과 평전을 작성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에게 감사패 전달식도 진행되었다.
<운암 김성숙 선생 공적>
운암 김성숙 선생(1898. 3. 10.~1969. 4. 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1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선무산자동맹’과 ‘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하였으며, 1923년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 가 ‘고려유학생회’ 및 ‘창일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열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1938년 ‘조선의용대’ 간부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고, 이후 내무차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 행정부의 한 부처로 선전부가 설치됨에 따라 조소앙, 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선전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에는 서울로 들어와 근로인민당 결성 등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전윤희 기자 nbss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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